에스겔 37장 1-14 (마른 뼈에서, 생기에서, 성령이 임하는 모습)

 

오늘 성경에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3차례 대언하면서 1). 마른 뼈가 사람이 되고 2). 생기를 얻으며, 3). 하나님의 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는 말씀이 됩니다.

뼈는 아주 말랐지만, 듣는 귀가 있습니다. (v.4-b)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매우 상징적입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들을 것을 듣지 못하기에 마른 뼈가 됩니다.  오늘 날의 마른 뼈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때론 정말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다면 나에게 이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믿음으로 나의 현실을 이기기에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나는 감사할 능력도 없고 기도 할 마음도 없습니다.

이 모습이 심히 “아주 말라버린 뼈”의 모습이 됩니다. 세상은 이 말라버린 뼈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나의 인생은 세상의 마른 바람에 말라 갈 뿐입니다.  왜 아주 말라버린 뼈가 됐습니까? (v.2-b)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고” 뼈가 아주 마른 것을 강조 합니다. 뼈가 왜 아주 말라버렸습니까? 여기서 말랐다는 의미는 Hebrew로 보면 습기가 없어서 마른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꽃에 물이 없어서, 나무가 물이 없어 말라 죽는 것과 같은 내용이 됩니다.

유대인에게 습기,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나의 인생이 마른 뼈가 됐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때입니다. 더 이상 견뎌낼 힘도 없는 마른 뼈와 같은 인생이라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비)가 임 할 때입니다.

두번 째는 말씀이 들려집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마른 우리에게 습기를 주십니다.  생기가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마른 뼈와 같이 내 인생이 죄로 뒤덮이고, 병들었을 때에 주님은 찾아옵니다.  아주 말라버린 뼈에게 들려진 첫 번 음성은 (v.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뼈와 뼈가 마주치며 연결 될 때에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낫을 것이며, 힘줄이 생기며 살이 오를 때에는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으며, 가죽이 덮일 때에는 사람의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v.8-b) 생기가 없습니다. 여기서 생기란 어떠한 신체적인 활발함을 뜻하는 생기가 아닌 하나님이 창조 때에 아담에게 부어 주신 생령을 뜻합니다.

본문은 사람의 육체에 대해 매우 독특한 말씀을 합니다. Hebrew로 육체를 Basar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단어를 짐승에도 동일하게 씁니다. 사람을 새와 육츅, 땅에 기는 것과 동일시합니다. 사람이지만, 생령이 없으면 짐승이 됩니

하나님은 생령이 없는 사람을 성경은 육축, 짐승으로 봅니다.  한 젊은이가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어떤 짐승에게 물리는 것이 가장 위험한가요?” 젊은이는 짐승의 이름을 듣기 원합니다. 그런데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밀고자의 이빨이 가장 치명적이고, 아첨꾼의 이빨이 가장 무섭다” 합니다. 사람의 이빨이 짐승의 이빨보다 무섭고 치명적인 이유는 자신의 본능과 욕심에 따라 갈 때입니다.

생령이 없는 인간은 짐승입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짐승은 죽음 이후에 관심이 없습니다. 개에게 지옥과 천국은 없습니다. 저 날아가는 새에게 영생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며 자족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사는 인생은 정말로 짐승만도 못한 삶이 됩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내가 준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v.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왔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공간적인 임재를 뜻합니다.

(v.9)에서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무엇이라 합니까? 이 사망을 당한 자가 됩니다. 뼈에 힘줄과 살이 올라도 생기가 없으면 사망을 당한 자, 죽은 자입니다.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부어주신 영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표현해주는 단어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는 힘을 뜻합니다.

 

3 번째 말씀이 임합니다. (12)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무덤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고향 이스라엘의 땅으로 들어가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과 관계없는 인생이 됐습니다. 우리들이 갈 곳은 저 하늘나라가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의 인생을 어디에 묶으시겠습니까? 이 땅에 내 뼈룰 묻기에 내 인생을 이 땅에 묶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길의 동반자를 하나님의 신을 우리 속에 두신다고 합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 하나님의 신이 이 좁고 좁으며, 바늘하나 꽃을 곳 없는 강퍅한 마음에, 추한 내 삶에 들어와 계신답니다.  무소부재하며, 전지전능하신 성령이 나의 좁은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기억하시며 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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